은퇴 이야기

2025년 5월의 어느 날...

chaeum 2025. 5. 2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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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5월의 어느 날...

요즘은 아침 공기가 유난히 맑게 느껴진다. 눈을 뜨면 한동안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분주했던 마음도 이제는 그저 조용하다. 정년을 앞두고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후부터다.
한때는 수십 명의 인력과 복잡한 현장을 이끌던 내가, 이제는 공사 관리와 최종 승인만 맡고 있다.
꼭두새벽부터 전화가 울리던 시절, 도면 하나에 수십 번 검토를 반복하던

그 긴장된 시간들이 이젠 어쩌면 조금 그립다.

오늘도 현장 감독자에게서 보고가 왔다. 필요한 말만 간단히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창밖의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오월의 햇살이었다.
따사롭고 부드러운 빛인데, 왜 이리 가슴 한 켠이 저릿한지.
어릴 적 여름방학을 앞두고 마냥 설렜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어딘가 모르게 뒷모습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불합리한 작업 방식이 눈에 띄면 여전히 지적한다.
'이제는 남 일처럼 넘겨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놓지를 못한다.
나를 믿고 따라왔던 후배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맡았던 공사마다 밤늦게까지 머물던 현장의 냄새가 문득 그리워진다.

예전엔 매사에 앞서 말하고 행동했지만,
이젠 말보다 침묵이 편하다.
대신 마음은 더 자주 움직인다.
누군가를 꾸짖는 대신 그 사람의 사정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작은 풀잎 하나에도 마음이 머문다.

요즘은 마치 내가 시인이 된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시처럼 보여서다.
햇살, 바람, 현장에 남겨진 발자국, 커피잔의 온기.
모든 것이 어떤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는 내게 주어진 하루를 차분히 걷는다.
예전처럼 바쁘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지금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남은 시간 속에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천천히 되새기고 싶다.

그리고 그게 나의 마지막 업무가 아닐까 싶다.
나를 정리하는 일.
조용히 물러나되, 따뜻하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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