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버스에서 바라본 풍경
회사버스에서 바라본 풍경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는 회사버스를 탄다.
목적지도, 경로도, 심지어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마저도 오랜 시간 익숙해졌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은퇴를 몇 달 앞둔 지금,
반복의 무채색 속에 감춰져 있던 작은 색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걸까.
창밖으로는 변함없이 논과 밭이 펼쳐지고, 계절을 따라 연두빛이 짙어지거나 누렇게 익어간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던 그 장면들이, 이제는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느릿하게 감긴다.
저기 벼가 자라고 있는 논두렁 옆길, 처음 회사에 입사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노선을 탔던 날도
그 풍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미처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젊은 동료들이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가 그랬듯 그들도 매일 같은 노선의 풍경을 무심히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이 창밖을 바라보며 멈춰 설 날이 오겠지.
바쁘게 달려왔던 날들, 사택과 회사,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
그 단조로운 루틴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추억이 쌓여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기념사진처럼 느껴진다. 담아두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골길이 아니라,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담아낸 배경화면 같다.
버스가 익숙한 커브길을 돌면, 아침 햇살이 논 위로 부서진다. 마치 내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이라지만, 이 정든 풍경을 떠난다는 건 마음 한편을 괜스레 시리게 만든다.
아마도 나는 이 길을, 이 창밖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작은 창틀. 오늘도 그 속을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