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일 흐리고 비
84세 장모님의 마지막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장모님은 평생을 농사일로 살아오신 분이셨다.
이른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논으로 밭으로 나가셨고,
해가 저문 뒤에야 겨우 집에 들어와 찬물로 손을 씻으셨다.
그 손.
굳은살이 박이고 검게 타버린 손.
그 손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계절마다 곡식을 일구셨다.
장인어른이 몰던 경운기가 언젠가 논두렁에서 뒤집혔고
그 사고로 장모님은 척추뼈를 크게 다치셨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 했고,
장모님은 그렇게 부서진 몸으로도 농사일을 놓지 않으셨다.
"몸이 아파도, 논은 내가 알아."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어머니의 삶.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가난하지만 단단했던 생의 무게였다.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면
항상 우동을 좋아하셨다.
“나는 국물이 시원해야 밥이 넘어간다” 하시며
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드시는 그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이셨다.
나는 그때마다 꼭 우동을 사드리곤 했다.
그 작은 기쁨이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지금도
문병을 가면 꼭 손을 잡아주시고
“고생 많지, 항상 건강 챙겨라”
그 따뜻한 덕담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의 걱정과 사랑은
언제나 묵묵했고 조용했으며
그 깊이는 바다처럼 넓었다.
10년 전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난 뒤
장모님은 몸도 마음도 점점 쇠약해지셨다.
그 무게를 겉으로 표현하신 적은 없지만
이따금 먼 산을 바라보던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당신의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장모님은 요양병원 작은 창문 아래
거의 말을 잃고 조용히 누워 계신다.
의사는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고 한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장모님,
당신이 걸어온 삶은 험했지만
한없이 따뜻하고 단단했습니다.
평생을 고생만 하셨지만,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그리운 논밭을 다시 걷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동 한 그릇 국물처럼,
시원하고 따뜻한 평안을
당신께서 누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머님의 따뜻했던 그 손길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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