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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시간들 속에서"
장마비가 한 줄기씩 흙냄새를 깨운다.
잠시 들른 주말농장은 지난주보다 더 풍성해졌다.
수박과 애호박, 오이 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생명의 기운을 뽐내고 있다.
작은 손바닥만 했던 애호박과 오이는
어느새 식탁 위에 올라올 만큼 넉넉하게 자라 있었다.
가지는 보랏빛으로 고개를 들고,
방울토마토는 여름 햇살을 담으려 붉은 빛을 품는다.
애플수박과 참외도 비록 크진 않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를 맺고 있다.
한겨울을 지나온 상추는 여전히 푸르다.
낡은 땅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푸른 것들.
이 풍경 속에서 나는 나의 정년을 떠올린다.
긴 시간을 살아온 나도 어쩌면 이런 작은 열매들 같다.
한때는 연약하고 작았던 존재가 꾸준히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과 더위를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다.
크진 않아도, 화려하진 않아도,
내 삶이라는 밭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이
결국 이렇게 작은 열매로 맺히는 것 같다.
정년이란 끝이 아니라,
내 삶에 맺히는 작은 열매의 계절이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아주 조용하게.
내 삶의 밭은 여전히 푸르고,
앞으로도 작은 열매들이 더 열릴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자라고 있고, 내일도 또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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